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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경은 매우 짧은 기도문이지만 가장 자주 하는 기도이다. 더구나 입과 손과 마음 즉 나의 온 존재로서 신앙의 근원인 삼위일체의 신비를 고백하고 구원의 도구인 십자가를 표시하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면서 은총을 비는 기도이다.
손으로 이마와 가슴과 양 어깨를 짚어가면서 몸에 구원의 십자가 표시를 한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내 몸에 표시함은 나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임을 자신과 이웃과 하느님께 드러내는 것이다.
입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라고 함은 계시된 모든 교리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교리를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름으로'하는 것은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과 함께,하느님을 의지하여 한다는 뜻이다. 결코 나를 위하여, 나 혼자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아멘'은 '굳은, 확실한,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이란 뜻이 있는데 기도문 끝에 붙여 그 기도문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을 강조한다. 손으로 머리를 짚는 것은 내 모든 지혜를 다하고, 가슴을 짚음은 내 모든 정성을 다하고, 양 어깨를 짚음은 내 모든 힘을 다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한다는 뜻이다.
로마 전례에 따라 성호경을 제대로 염하고 십자표시를 긋자면 먼저 왼손을 펴서 가슴에 얹고 '성부와' 하면서 오른손으로 이마[온 우주의 주이시며 지혜이신 성부를 가리킴]를 짚고,'성자와'하면서 가슴[사람이 되시어 사랑을 가르치신 성자를 가리킴]을 짚고 '성령의'하면서 양 어깨[은총의 근원이시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힘이신 성령을 가리킴]를 짚은 다음 양 손을 합장하며 '이름으로. 아멘' 한다. 이때 합장한 두 손의 끝은 약간 하늘을 향하게 하고 오른손 엄지를 왼손 엄지 위에 얹어 십자형(+)이 되도록 한다.
십자 성호의 종류와 유래
십자 성호는 "작은 십자 성호"와 "큰 십자 성호" 두 가지가 있다.
시대적으로 보아서는 "작은 십자 성호"가 먼저 시작되었다. 작은 십자 성호는 엄지손가락으로 이마, 입술, 가슴에 십자 표시를 하는 성호인데, 이마에만 작은 성호를 긋기 시작한 것은 사도 시대부터였으며, 입술과 가슴에 성호를 긋는 것은 4세기 이후부터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미사(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도 친히 사도들에게 명하신 제사(祭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십자가상 제사를 새롭게 하고,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모든 은혜를 베푸는 천주교회의 중심이 되는 예식이다.) 중 성경을 읽기 전에 이 작은 성호를 긋는데, 먼저 이마에 긋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머리에 잘 담아 기억하고, 또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입술에 십자를 긋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남에게 전하겠다는 뜻이며, 가슴에 긋는 것은 그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세례 성사 때 또는 기타 강복, 축성식의 경우 손으로 간단히 긋는 작은 십자 성호가 많이 있다. 큰 십자 성호는 우리가 많이 쓰는 것으로 11세기경에 온 교회에서 쓰기 시작하였다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이기에 '주님의 기도'라 하며(마태 6,9-13;루가11,2-4), 그 안에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명백하게 포괄적으 로 집약되어 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공동체[그리스도인들]의 근본 이념과 염원이 표현되어 있는 기도이다. 초대교회에 서는 신자들에게 성세 받은 자의 특권으로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바치게 하였다. 우리 모두에게는 성세성사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호칭으로 시작된다. 호칭에 따라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수님이 친히 발음하신 아라메아어로 '아빠'라고 하셨는데 아라메아어의 '아빠'(Abba)는 젖먹이가 말을 배우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아무도 일찍이 하느님을 감히 아빠라 부르지 못했지만 예수님 은 즐겨 아빠라 부르셨고 예수님만이 가지고 계신 이 특권을 우리도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기에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친아들로서 당신의 품위에 참여하라는 뜻으로, 또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께 신뢰하고 하느님을 보다 가까이 느끼며 친밀하게 대화하라 는 뜻으로 '아빠'라 부르게 하신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주님의 기도에서는 '일곱가지 청원'을 드리는데 처음 세 가지는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후반부의 네 가지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이다. 전반부는 세가지로 나누어져 있으나 실은 '아버지의 영광'을 비는 것 하나로 요약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개개인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를 통해 세말에 완성된다. 그러므로 우선 나부터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야 할 것이고 나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내 안에 하느님이 거처하시도록 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악의 노예가 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왕권이 하루 빨리 내림하기를 빈다. 즉 하느님의 구세사업이 빨리 완성되어 만천하에 밝히 드러나기를 비는 것이다. 후반부의 네 가지는 전반부에서 청한 것, 즉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한다.
첫째, 우리가 구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 즉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다. 결코 부자되기를 욕심내지도 않고 곤궁을 원하지도 않는다. '아빠, 아버지'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굳게 믿으면서 그분의 섭리를 기다리는 위탁의 자세이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이란 끼니에 필요한 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 영생을 위한 예수님의 살과 피, 즉 영혼의 빵[성체]까지를 가리킨다. 그래서 영성체 전에 반드시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일용할 양식을 부탁하는 청원에는 우리 삶 구석구석에까지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이 스며들어 하느님의 참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영적 물질적 은혜를 청하는 간구가 들어있다.
둘째, '죄의 용서'를 빈다. 우리 구원의 첫째 조건이 용서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고 새 생명을 주는 시작이다. 우리는 이미 구원의 시대 즉 용서의 시대에 살고 있기에 우리가 받은 용서를 이웃에게도 베풀 줄 아 는 아량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용서할 용의가 없는 사람은 자기 잘못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빌 자격이 없고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제 '아빠, 아버지'께 당연히 용서를 빌고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마련하신 관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셋째,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괴하는 죄의 전조인 '유혹에 빠지지' 않는 은총을 구한다. 즉 아버지를 배반하지 않기를 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처음부터 유혹을 당하지 않게 해주시기를 비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사는 동안 유혹이 없을 수는 없지만 유혹에 떨어져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뜻으로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끝 맺는데 이는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비는 불안한 어린 자녀의 간구이다. 진리와 행실을 그르치지 않으며 육체적 재난도 당하지 않게 해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유혹과 악의 세력 앞에서 움츠러들 까닭이 없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시며 생명의 빵과 용서를 베푸시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리 높여 "아버지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미사 때 주님의 기도의 응송]하며 마음껏 노래하자.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아멘
성모송은 주님의 기도와 같이 자주 염하는 기도로서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에게 찬미와 존경을 드리고 우리를 위해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비는 기도이다. 성모송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리아를 찾아온 대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말 즉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루가 1,28)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이 마리아 가 예수를 잉태하신 것을 알고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루가 1,42) 라고 인사한 말로 구성되어 있다.
후반부는 성모 마리아의 전달을 구하기 위하여 교회가 만든 기도문이다. 주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 호칭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넘치도록 받으신 분, 하느님과 일치되어 계신 분,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은총이 가득하시고, 주님께서 함께 계신 분'이시기에 대천사의 지위에 있는 가브리엘이 '기뻐하소서'하며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성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도록 간택되셨으니 이런 인사와 축하는 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었기에 예수님을 잉태하신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은 대천사 가브리엘보다 더 분명한 말로 인사하며 '여인 중에 복되시다'라고 마리아를 칭송하였다. 이 인사말에는 자기의 남편 즈가리야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았으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잉태하셨으니 세상의 어떤 어머니보다 행복하시다는 축하의 뜻이 들어있다.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를 잉태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은 구세주가 인류에게 베풀고자 하는 모든 은공을 이미 받은 결과이다. 즉 죄악의 손상을 받지 않은 채 항상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주님께 대한 믿음과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으로 구원된 자의 으뜸이 되었다. 엘리사벳의 인사는 계속된다.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태중에 계신 예수님은 영원히 복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어머니의 복은 아들의 복이고 아들의 복은 어머니의 복일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아들이 누리시는 복을 인간인 성모 마리아도 누리시게 되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만이 복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성모 마리아의 아들로서 어머니의 복에 참여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낳으신 예수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즐겨 부른다. 하늘에 올림을 받아 천상 모후의 영광을 누리시는 성모 마리아는 주님과 항상 함께 계시기에 우리의 가장 좋은 은총의 전구자가되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리고 특별히 우리의 영생과 영벌이 결정되는 순간 즉 죽음에 임할 때 믿음과 겸손이 부족한 우리를 위해 주님께 빌어주시기를 간구한다.
많은 성인 성녀들, 특히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 마리아를 통해 은총 자체이신 구세주를 인류에게 주신 하느님께서 오늘날에도 성모 마리아의 청으로 많은 은총을 주신다고 확신하였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의 어머니로서 또한 은총의 중재자로서 그 사명을 다하고 계심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
우리가 약하면 약할 수록 우리 어머니신 성모 마리아의 모정은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신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특별히 죄중에 있을 때 죄인들의 구원자 예수를 낳으신 성모 마리아께 간구할 것이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를 닮아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할 수 있는 굳은 믿음과 깊은 겸손으로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심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서 복되게 살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웃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주색 부분에서 고개를 숙이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기도문이다. "영광(榮光)이란 말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예컨대 "이런 자리에 불러 주셔서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한다. "영광"이란 말은 "올바로 알아준다"는 뜻이다.
그이를 그이답게 알아 모실 때 "영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하느님의 전능과 인자와 영원성, 절대성을 그대로 알아서 높이 모신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기도서에 보면 "주님, 영광 받으소서."란 구절이 자주 나온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문을 여기서 설명하는 작은 영광송, 미사 때 외우는 대영광송(大榮光頌) 두 가지가 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한마디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뜻이지만, 하느님의 삼위 일체(三位一體)를 들어 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신(神)의 신비를 영광으로 찬미하라는 뜻이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이 성부. 성자. 성령께로 돌아가되, 태초에 삼위께서 누리시던 것과 같이 지금도 그래도 영광이 있을 것이며, 또한 언제든지 마침이 없이 영원히 있어지기를 비는 기도문이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파란색 부분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신경'이란 말은 라틴어로 Symbolum(표시)이라 하는데 신앙적 교리를 교회가 권위있게 공식 문구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신경을 염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진리를 모두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즉 신자의 표시로 신경을 염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주님의 기도와 함께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의 특권으로서 이 기도를 염하게 했고 이 기도의 내용을 믿는 것은 신자의 의무였다.
모든 신경은 '나는 믿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믿음이란 지성을 가진 피조물 즉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믿음은 오관을 통해서 감지할 수 없고 지능으로 밝히 깨달을 수 없지만 말씀하시는 이의 진실성을 보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즉 성부, 성자, 성령과 그 업적을 차례로 고백한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운 신앙의 근본 가르침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성전으로서 가톨릭교회의 모든 교리가 요약되어 있으며 열 두개의 신앙조항으로 구분될 수 있다.
1) 나는 무에서 유를 지어내시는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나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다.
2) 나는 생명의 근원이신 성신의 힘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이 평생 동정이신 성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지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그분이 바로 나의 주님이심을 믿는다.
3) 나는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를 다스리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을 모독하고 백성을 현혹했다는 유다인의 고발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아리마테아 사람 요셉의 돌무덤에 묻히셨음을 믿는다.
4)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조들[구약의 성인들]이 구원자 오시기를 수 천 년 동안 고대하고 있던 고성소에 가시어 그들을 위로하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첫 사람이 되셨음을 믿고, 하느님의 친 아들 이심을 믿는다.
5)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40일 만에 하느님 나라에 오르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오른편 에 앉으시어 아버지와 똑같은 영광을 누리시며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시고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다
6)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종말에 권능을 가지고 다시 오시어 산 이와 죽은 이 즉 모든 사람을 심판하여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리라는 것을 믿는다.
7) 나는 천주 제3위로서 성부와 성자와 같이 한 하느님이시오, 진리와 생명과 사랑 즉 모든 은총의 근원이신 성신을 믿는다.
8)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시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구원이 될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 되며 세상 종말에 완성될 순례하는 교회를 믿는다.
9) 나는 하늘 나라에 있는 성인들과 세상을 떠나 정화 중에 있는 연옥영혼들 그리고 순례의 길을 걷 고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가족을 이루고 같은 생명을 누리면서 서로 공을 통함으로써 도와주고 있음을 믿는다.
10)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첫째 이유가 우리에게 죄의 사함을 베풀기 위함이요, 예 수님으로부터 죄 사하는 권한을 받은 교회가 우리의 죄를 사해줄 수 있음을 믿는다.
11) 나는 죽은 후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세상이 끝나는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됨을 믿는다.
12) 나는 육신과 영혼이 다시 결합하게 되면 선인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끝없이 누리리라는 것을 믿는다.
사도신경 외에도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아타나시오 신경과 같은 신경이 있다.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
◎아멘.
하루의 생활을 간단히 반성하는 기도문이다. 우리는 매사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하루동안 `생각과 말과 생실이나 궐함'으로 죄를 범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데는,
첫째 생각으로 죄를 범하고
둘째는 말로써
셋째는 행동으로
그리고 해야 할 일을 궐함으로 죄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이상 네가지 문제를 특별히 반성하고 `그 중에 습관된 것'을 살펴서 나쁜 버릇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삼.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육. 간음하지 마라.
칠. 도둑질을 하지 마라.
팔. 거짓 증언을 하지마라.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이는 하느님을 창조주, 가장 높으신 주님으로 알아, 최고의 공경과 흠숭을 드리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내적으로 흠숭(신, 망, 애 삼덕으로 하느님을 흠숭)하고, 기도, 전례 성사 등 외적 공경을 드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는 하느님께만 드릴 공경을 다른 이에게 바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신, 마술, 마법, 신강술, 관상, 토정 비결, 손금 등을 금하며, 축성된 성물을 매매하는 행위, 신앙을 거스르거나 해치는 말이나 독서, 하느님의 전지 전능이나 지혜, 인자 등을 시험하는 행위도 금한다. 이는 신덕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마태 4,7; 레위 19,31).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에 신뢰하지 않거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미루어 의탁하기만 하고, 자기의 할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망덕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거나 갖가지 죄를 범하는 행위도 금한다. 이는 애덕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이는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정성되이 부름과 맹세와 허원을 지키라는 것이다. 맹세(盟誓)란 전능하신 하느님을 사실의 증거자로 부름을 말한다. 그러므로 합당한 맹세가 되기 위해서는 진실되고 의로우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맹세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맹세할 의향을 갖고 외적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허원(許願)이란 하느님을 위해 어떤 특정한 선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완수하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을 하느님께 자유 의지로 하는 약속을 말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결심이나 의향이 아니고, 의무를 지니는 하느님께 대한 약속이다.
그런데 허원은 사적, 공적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사적 허원은 신자가 개인적으로 하는 허원이며, 공적 허원은 수도자가 공적으로 청빈, 정결, 순명으로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 서원
2계에서 금하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갖거나 멸시하는 것, 혹은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남에게 재앙이 되기를 비는 것 등을 말한다. 특히 참된 종교를 욕하는 것도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도 시대 전통을 따라 그리스도 부활 날에 그 기원을 두고, 8일째마다 파스카의 신비를 경축한다. 이날은 주일(主日)로서 신자들이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 성제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일은 원래 안식일(安息日)이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과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신 것을 기념하는 일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모든 이에게 기쁨과 희망의 원인이 된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이 강림하시어 구원 사업을 완성하심을 기념하는 날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그날이 일요일이었으므로 토요일이었던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 안식일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미사 성제에 참여하고, 과중한 노동을 피함으로써 신심의 휴식을 취하며, 주님을 섬기는 날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시대와 환경의 변화로 주일을 지키기 어려운 이들에게, 교회는 주일의 본분을 다른 날에 이행할 수 있도록 특전도 베풀고 있다.
즉 일요일과 의무적 축일 미사를 전날 저녁 미사에 참여(土曜 特典 미사)함로써 주일 의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특전(特典) 미사는 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주일 미사의 참여 기회를 넓히기 위해 단행한 전례 개혁 중 하나이다.
또한 유다인들은 하루를 일몰(日沒)부터 계산하였고, 교회력에 있어서 축일이 그 전날부터 시작되는 데에 근거를 두었다. 한국 주교 회의는 교황청의 허가를 얻어, 1970년부터 교구별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이함과 편안함만을 위해, 그리고 단지 일요일에 휴식만을 위한 방편으로 이 특전 미사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돌보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윗사람도 공경하며 사랑해야 한다. 또한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모범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며, 신앙을 굳게 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잘못을 사랑으로 고치도록 해야 한다(에페 6,4).
특히 부모는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자녀들은 가정의 산 멤버로 그들 나름대로 부모들의 성화에 이바지하며, 감사하는 마음과 효심과 신뢰로써 부모에게서 받은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역경에 처하거나 노후의 고독 중에 있을 때, 자녀답게 봉양해야 한다(사목 헌장 48항 참조).
이는 인간의 육신 생명을 존중하고 구원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인 만큼, 자기가 타인의 생명 또는 이에 직결되는 육체에 대해서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남이나 자기의 생명과 영혼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부당하게 남을 죽이거나 남의 건강을 상해하거나 모욕하거나 학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는 행위이며, 남의 권리를 직접 침해하는 것이고,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마태 18,6). 그래서 자살(自殺)은 자신의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큰 잘못이다.
이상은 생명에 대한 절대권을 가진 하느님의 권위를 침해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확실하게 자살한 자를 위한 공식 예절, 즉 위령 미사나 고별 기도 등을 금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육신 생명을 경솔하게 여기지 말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세상 마치는 날에 부활시키실 육신을 존중해야 한다(마태 5,8). → 안락사, 낙태
이 계명은 정조(貞操)를 보호하고 정당한 부부 관계 외에 모든 정조의 남용을 금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남용을 허용한다면 혼인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며, 인간 사회에 큰 혼란이 일어나 인간이 동물과 같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간음과 사음뿐만 아니라, 온갖 음란하고 부정한 행실과 그러한 행위로 이끄는 모든 위험한 기회까지 금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분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결백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1고린 6,9-11; 에페 5,3-5; 갈라 5,20-22). → 간음, 사음
남의 재물을 존중하라는 이 계명은 사유 재산권을 보호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누구나 가족의 생활, 자유와 행복을 위해 재물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하느님이 정하신 대로 인간은 자기의 활동으로 이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공정한 분배와 질서를 지키는 사회 제도는 하느님 계명의 요구에 맞갖은 것이다.
따라서 지상의 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고 나누며, 사회 공익을 위해 선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의 소유물에 대한 강도, 사기, 절도, 부당한 고리 대금, 부당한 수단으로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밖에도 지나친 유흥, 가산의 탕진, 남의 생계 수단을 빼앗거나 방해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직업에의 불충, 재산의 낭비 등도 금한다(마태 25,42).
이는 말과 행실을 성실히 하고 남의 명예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정직하고 남의 명예를 존중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고 타인의 모범이 되고,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명예도 존중해야 한다(마태 23,12).
따라서 거짓말, 위선, 허세, 위증, 비방, 억측, 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모든 일을 금한다. 특히 자만하거나 악담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겸손의 덕을 거스르게 된다(마태 7,1-2; 12,36-37).
부부는 마음과 몸의 정결을 지키고 서로에게 충실해야 한다. 부부 자신도 하느님의 모상으로 인간의 참된 존엄성을 향유하면서, 같은 애정과 같은 생각과 서로를 성화시키려는 노력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6계에 금하는 것 외에 그러한 행위에 대한 마음까지도 금하는 것이다(에페 5,3).
이 계명 역시 남의 재물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으면서 행사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남의 소유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남의 재산을 부당한 수단으로 취득하려는 욕망까지도 금한다. 즉 사기, 횡령, 도둑질할 마음, 남에게 손해를 끼쳐 재물을 모을 생각,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의 손해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없애야 한다(1디모 6,7-9).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하루하루를 살 수 있으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나, 하루를 살면서도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많이 하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이웃에게 끼친 누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 한다.
죄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게 하고 세상살이도 무질서하게 만들어 불행을 초래하며 나아가 이웃에게 해를 끼친다. 혼자만의 숨은 행위라 할지라도 이웃과 관련이 없는 죄는 없다. 따라서 무슨 죄이든 하느님의 영광에 손상을 끼치고 하느님의 분노를 사고 하느님의 은총을 감소 혹은 단절하여 하느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한다. 더 나아가 내 안에는 하느님 대신 악이 자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촌각을 다투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고백과 통회가 필요하다. 이 통회와 고백을 도와주는 기도문이 '고백의 기도'와 '통회의 기도'이다.
고백의 기도는 미사 중의 참회예식[제 1 양식]때 사용하는 기도문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이 기도에 담긴 뜻은 다음과 같다.
"전능하시어 나의 마음속까지 알고 계신 하느님과 희노애락을 같이 하며 나의 성장을 도와주고 있는 형제들에게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애덕을 거스렸고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며 생활하였기에 이를 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범죄하게 된 원인을 어느 누구의 탓으로 돌려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범죄 한 나 자신을 미워하고 스스로 내 가슴을 치면서 뉘우칩니다. 하지만 나는 죄인으로서 감히 하느님 대전에 용서조차 빌 면목이 없으니,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은총의 전달자들은 나를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빌어 주십시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용서를 간구하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의노를 거두시고 죄를 사하시어 은총 중에 살 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십시오."
미사 중에는 고백의 기도를 마땅히 해야 할 것이지만 죄를 범한 후에나 하루를 반성한 후, 혹은 고백성사 전에 이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청할 것이다. 그리고 통회의 기도도 함께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통회가 요구된다. 진정한 통회에는 진실한 고백과 새 생활을 하고자 하는 결심이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통회는 "나는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 (요한 8,11)는 용서의 말씀을 듣게 한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아멘.
우리가 지은 죄를 뉘우치는 기도문이기 때문에 "통회(痛悔)기도"라고 한다. 이것은 죄를 참회하는 아름다운 기도문이기에, 천주교회에서 죄를 사하는 고해 성사 때 이것을 사제 앞에서 외운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우리는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 죄인이다. 마음으로 뉘우치기 전에 먼저 범죄의 사실을 인정해야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죄를 범했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사랑과 은혜를 배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상대방의 사랑과 은혜를 사랑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우리는 죄 의식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실제로 하느님께 상처가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적인 표현이고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느님의 신성에 누를 끼쳤다는 뜻이다. 악을 저지른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고, 선을 소홀히 한 것은 하느님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주님의 은총으로 보상을 치른다는 뜻이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범죄의 기회를 미리 피하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범죄의 기회가 있으면 죄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로부터 성인들은 범죄의 기회를 미리 피하라고 가르친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십자가의 수난은 전 인류의 죄를 씻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속죄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은 죄를 십자가의 수난으로 용서해 달라는 뜻이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하느님 편에서는 인간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자비 즉 은총이고 인간 편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 희망, 사랑이다. 그래서 이 신망애를 향주삼덕이라 하고 줄여서 삼덕이라 한다.
덕은 어떤 선을 되풀이하여 행함으로써 생기는 좋은 습성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이에 거스르는 행위를 했을 경우 두렵고 괴롭지만 덕을 실천하면 기쁘고 편 안함을 느낀다. 반대로 덕이 없는 사람이 덕을 실천하려면 어렵고 힘이 들지만 덕에 어긋나는 행위는 쉽게 행한다. 그러므로 덕을 쌓으려면 처음에는 어렵고 힘이 들지만 계속 노력하면 기쁨을 느끼게 되고 덕을 실천하기가 쉬워진다. 하
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는 것 이기에 완덕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계속 노력해야 한다. 향주삼덕은 성세성사를 받을 때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으로서 한 번 받음으로 영구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 덕행을 닦아 나가기에 힘쓰며 더 큰 덕을 주 시도록 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 삼덕송을 바쳐 믿음, 희망, 사랑의 초자연적 덕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하겠다.
신덕송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기도문이다. 우리가 믿되, 한번 기분이 좋아서 기분에 따라 믿는 것이 아니고, 확실한 믿음의 근거를 두고서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습성을 신덕이라고 한다. 이 신덕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주시는 은혜로 되는 것이다. 전 세계 10억이나 되는 신자들이 한결 같이 빵 형상으로 된 성체(聖體)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어떻게 사람의 힘이라고 하겠는가? 우리가 구령하기에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신덕이다. 왜냐하면,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이 말씀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즉 하느님은 모든 진리(眞理)의 근원(根源)이시고 그르침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믿는 것은 아는 것과 다르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 지구가 해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고, 다만 그것을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권위를 보고서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도 우리가 그 교리 내용을 다 알아듣기 때문이 아니며, 그것이 우리 구미에 맞기 때문도 아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는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진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진실의 권위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음이다. 진실하신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우리를 속이지도 않으시고 또 스스로 속을 수도 없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권위를 보아서 믿는다.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여기서는 우리가 믿되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대답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계시하신 진리" 이다. "계시(啓示)"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를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과 성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직접 하늘나라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을 계시라 하고, 이 계시된 진리(眞理), 즉 참 진리의 길을 교회가 권위 있게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교리를 교회는 틀리지 않게 한결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을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알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인다.
망덕송
우리가 하느님을 희망하고 바라는 덕을 망덕(望德)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 때는 반드시 어떤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걸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망덕송은 신덕의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우리가 망덕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왜 우리가 희망을 걸고 믿는가 하면, 하느님은 자비의 근원이시고 우리를 저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해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우리가 무엇을 희망하고 바라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여기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당신의 은혜를 주시겠다고 했으니, 약속하신 대로 이 은혜를 주실 것을 바란다. 하느님의 은혜가 없이 우리의 힘만으로는 구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세상이 지난 다음 후세에 가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즉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란다. 하느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사람들은 흔히 주겠다고 약속만 하고 주지 않는 수가 있으나, 하느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으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온 희망을 걸고 굳게 바라야 한다. 바라지도 않는 자에게는 하느님께서 은혜를 주실 리 없기 때문이다.
애덕송
하느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사랑"이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도 이르기를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사랑을 드러내는 애덕송(愛德誦)은 모든 덕행의 중심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첫째 이유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랑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좋으시기에 사랑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둘째 이유 이다. 꽃밭에 피어있는 꽃이 아름답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흘러나온, 아름다움의 샘이신 하느님께서는 과연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 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하는 것은 마음속으로부터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되 누구보다도, 부모보다도, 형제보다도, 애인보다도, 국가보다도, 세상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최대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 다음으로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둘째 번 대답이다. 첫째는 하느님을, 둘째로는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의 물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물건은 이 세상 만물 이다. 그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천사와 사람인데, 이것을 우리는 다른 것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집주인을 사랑한다면 그 집안의 모든 가족들도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것과 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니까 하느님의 한 가족이 될 사람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집주인에 대한 사랑과 다른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같아서는 안 되듯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같아서는 안 되고 구별이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함은 자기 몸과 똑같이 사랑하란 말은 아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마태 7, 12) 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 정도로 남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신. 망. 애덕 중 신덕과 망덕은 이 세상에서만 있을 수 있고, 천국에 가면 안개같이 사라진다. 그러나 천국에서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니까, 애덕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Ⅰ고린 13, 13) 라고 하였다.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
"봉헌(奉獻) 기도"는 지금까지의 모든 기도문의 총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도문이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오롯이 바치는 내용이기 때문에 "봉헌 기도"라고 한다.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기 전에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의 동물인데, 이것은 오로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요, 우리는 또한 동물이 할 수 없는 하느님 공경을 할 수 있다는 특권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과 영혼을 동시에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창조된 것과 영혼을 가지게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을 사랑할 줄 알고 하느님을 알아 공경함으로써 더 큰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들인 인간에게 사랑과 의리를 바치기 위함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나는 비록 죄인이지마는, 즉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지마는 이제부터는 하느님이 주신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바치겠다는 뜻이다.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마치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물(祭物)이 되시어 천주 성부께 바쳐진 것처럼, 우리의 모든 행위도 오로지 하느님을 찬미하고 봉사하는 뜻으로 하여 하나의 제물로 드리겠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하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아름다운 기도문이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가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생명이 아니다. 그분이 주신 것이다. 깡그리 공짜로 주셨으니 우리도 그분께 우리의 모든 삶을 바쳐서 그분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목적이다. 주신 그분께 모든 것을 바쳐서 영원한 보화를 받는 기도문이다.
1. 먼저, 지은 죄를 모두 알아내고
2. 진정으로 뉘우치며
3.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4. "고백기도"와 "통회기도"를 바친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아멘.
고백한 지 (몇 일, 몇 주일, 몇 달)됩니다.
알아낸 죄를 낱낱이 고백한다.
죄를 고백한 다음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사제는 고백자에게 훈계하고 보속을 준다.
필요하다면 고백자에게 다음 통회기도를 바치게 할 수 있다.
(통회의 기도)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아멘.
사제는 고백자 머리 위에 두 손이나 오른손을 펴 들고 사죄경을 외운다.
+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주셨으니
교회를 통하여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는 성부와
+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아멘.
+ 주님을 찬미합시다.
주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감사합시다.
○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성모송)
○ "주님의 종이오니
●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송)
○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
(성모송)
○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하느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삼종은 종을 세 번 친다는 말이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써 종을 세 번씩 친다. 이 종소리를 듣고 외우는 기도라 해서 "삼종 기도"라 한다.
삼종은 이렇게 친다. 즉 먼저 땡! 땡! 땡! 세 번 치고, 약간 쉬었다가 다시 땡! 땡! 땡! 세 번 치고, 또 약간 쉬었다가 땡! 땡! 땡! 세 번 친 다음 계속해서 댕그랑…친다. 종을 세 번씩 치는 이유는, 예수님의 강생 구속 도리가 셋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삼종을 세 번씩 침으로 다른 종소리와 구별 지어 삼종 기도 종소리임을 알리는 편리한 점도 있다.
삼종 기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예수님이 탄생하신 팔레스티나 성지(聖地)를 외교 백성들이 차지하고 있을 때, 이것을 되찾기 위해서 11세기에 십자군 이란 군대가 일어났다. 십자군이 성지 회복을 위해 떠날 때, 이들의 승리를 위해서 성당 종을 세 번 치면 기도를 바치라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십자군의 시대가 지난 다음에도 그 때 교우들은 그 아름다운 관습을 그대로 이어받아 기도를 바쳤다. 그래서 이것이 13세기부터는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위 만종(晩鐘)이라 해서 저녁에만 바쳤던 것이, 차차 아침에도 바치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정오에도 바치게 되었다 한다. '밀레'의 "만종"이란 것이 바로 저녁 삼종을 말한다. 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우들이 밭에서나, 공장에서나, 길에서나 삼종 소리를 들으면 일하던 것을 중단하고 삼종 기도를 바치는 것은, 가톨릭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도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종이 있는 성당이면 언제든지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삼종 종소리가 울린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마리아께 아뢰니"함은, 천사가 마리아께 어떤 사실을 알려 드린다는 말이다. "잉태(孕胎)"는 아이를 밴다는 뜻이다. 하늘의 천사가 마리아께 구세주의 탄생을 미리 알려 주었다. 이래서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이 마리아의 태(胎)속에 배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예수님이 잉태된 것이 아니다. 성령의 전능한 힘에 의해서, 남자의 간섭이 전연 없이, 마리아의 몸을 빌려 잉태되셨다. 그래서 마리아는 처녀로서 예수를 낳았다.
일종은 예수님이 탄생할 것을 알리는 말씀이다. 일종이 끝나면 성모송을 한 번 바치고 이종을 시작한다.
성모송을 외우는 것은, 삼종 기도가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모님을 중심으로 되어 있기에, 마리아께 대한 기도문을 바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성모송에는 또한 천사의 인사말이 들어 있어, 삼종 기도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성모님의 지극한 겸손과 순명의 정신이 엿보인다. 성모께서 천사의 아룀을 겸손되이 받아들인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3월 25일 우리는 주의 탄생 예고 축일을 지내고 있다.
일종과 이종에 나타나는 주의 탄생 예고의 장면이 루가 복음 1장 26절 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천사와 마리아 사이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천 사 :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마리아 :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 사 :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마리아 :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이 말은, 처녀인 당신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니 깜짝 놀라 하시는 말씀이니, 이것으로써도 마리아가 처녀의 몸이었다는 것이 똑똑히 드러난다. 그 후에도 마리아는 계속해서 처녀로 사셨기에 평생 동정(平生童貞)이라 한다.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
"말씀"은 성부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사도 요한이 쓴 복음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어려운 삼위일체의 문제인데, 여기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고, 간단히 요약해서 말한다면, 천주 성부의 뜻이 성자를 통해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의 생각이 말로써 표현되듯이, 천주 성부의 뜻을 성자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분이기 때문에 성자를 "말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말씀이 우리와 같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같이 계시게 되었다는 뜻이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마리아가 낳은 예수께서 하느님이시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그런 높은 지위에 있는 성모님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어 저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미리 약속하신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도문이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데, 중개자인 천사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다는 뜻이다.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어 마지막 부활로써 승리를 거두셨다. 우리의 최후 승리도 이후에 우리의 부활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생활 원칙을 찾을 수 있다. 즉 우리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우리의 부활도 십자가의 고통을 거치지 않고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이는, 다시 말하면 세상의 여러 고통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없다. 세상에서 당하는 우리의 고통이 이 다음 우리 부활의 영광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고통을 얼마나 잘 참아 받아야 할 것인가! 고통은 부활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서, 범죄한 인간과 선하신 하느님과를 서로 화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원조들의 범죄로 땅에서 천국으로 가는 다리가 끊어졌다. 이 끊어진 다리를 다시 놓는 분이 곧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놓으신 다리를 거치지 않고는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모든 천상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우리의 구령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만든 기도문의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라고 끝맺는다.
○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알렐루야.
●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부활 삼종 기도"를 전에는 "희락(喜樂) 삼종경" 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기쁨을 드러내는 기도문이라는 뜻이다.
교회가 가장 기뻐하는 때는 부활 시기이다. 그래서 부활 삼종 기도는 가톨릭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대로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바치되, 기쁨을 드러내는 기도문이기 때문에 늘 일어서서 바쳐야 한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모후(母后)" 란 말은 왕(王)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마리아는 왕들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낳았으므로 모후라고 말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말이다. 알렐루야는 부활 시기에 많이 외우는 기도문이다. 마리아께서 그리스도를 잉태하셨으니 기뻐하심이 마땅한 일이다.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마리아께서 낳으신 아들 예수께서, 당신이 죽은 다음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겠다고 미리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으니 기뻐하시란 뜻이다.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역시 여기서도 성모님은 우리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중개자로 나타나신다. 우리를 대신해서 빌어 달라는 내용이다.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당신 아들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으니, 이제는 십자가의 수난을 다 씻어 버리고 어머니로서의 마음의 상처도 다 씻어 버리고 기뻐하시란 뜻이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그리스도의 부활은 온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부활은 죄악. 마귀. 죽음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표시이며, 또한 우리 부활의 보증이 되는 까닭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던들 우리의 믿음은 헛될 것이고, 우리의 영생(永生)에 대한 희망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의 기쁨을 얻기 위해서 마리아의 전달을 구하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는 것이다.
식사 전
†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음식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도 하느님이 주셨고 생명을 위해서 먹는 음식도 하느님이 주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오곡백과 모든 것이 우리의 생명 때문에 있는 것이고 이것을 끼니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곡식이 익지 않고 과일이 여물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일 년 사 계절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그래서 식사하기 전에 우리의 생명과 연관된 음식의 축복과 함께 우리의 축복을 기원한다.
식사 후
†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우리가 받은 생명도 우리가 누리는 세상의 모든 것도 하느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도 모두가 하느님의 은혜이다. 오늘 먹은 이 음식이 새 생명을 위해서 필요한 바,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것이니 감사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 드리십시오" (골로 3,17).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이름은 곧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경의가 포함된다. 이름을 찬미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뜻이다. 식사가 끝나고 생명으로 가득 찬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식사 후에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식사와 생명은 연결되어 있듯이 죽은 영혼들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과도 연결이 된다. 살아 있는 우리가 연옥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기도가 없이는 연옥 보속이 빨리 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연옥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의 기도로 승천한 영혼은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한몫을 하는 이른 바 "성인 통공"의 교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며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일을 하기 전에 성령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신학적인 표현을 한다면 성부께서는 창조 사업을, 성자께서는 구원 사업을, 성령께서는 성화 사업을 하신다고 설명한다. 성부, 성자의 사업을 완성하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은혜를 구하면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 크리스찬 정신의 기본이다.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 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12사도가 성자께서 승천하신 다음 10 일 후에 성령을 받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령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주시기에 우리가 하는 일이 성령의 은혜로 날로 새롭게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성령의 빛을 받으면 모든 일이 바로 풀리고 일이 잘되어 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자칫 생각을 잘못한다든지 제대로 그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되고 따라서 나도 손해를 보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언제나 성령의 빛을 구하고 성령의 가르침대로 일을 해서 풍성한 결실이 있기를 기원하는 기도이다.
일을 마치며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지켜주시고
어려울 때 저희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마소서.
또한 온갖 위험에서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일을 마친 다음 우리는 가끔 지나친 성취감에서 교만해질 수 있고 또 재물과 연결되어 세속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어려울 때는 옛날부터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바쳐 왔다.
성모송의 경우 비슷하게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도와 주시는 성모님의 기도로 일을 끝맺는다.
아침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아멘.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 아멘.
† 우리 주 하느님께 권능과 영광
지혜와 굳셈이 있사오니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받으소서.
◎ 아멘.
†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주소서.
◎ 아멘.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당신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심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 넘쳐 사랑의 물방울이 이 세상에 떨어진 것이 곧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이다. 사랑은 영원한 것ㅡ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목말라한다. 사랑하는 부인이 옆에 있고 사랑하는 남편이 그리고 자녀들이 옆에 있어도 우리는 사랑의 갈증을 느낀다. 우리가 추구하는 영원한 사랑은 하느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류 창조가 시작되었고 그 사랑으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인간은 창조된 목적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참으로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 존재가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성서에서는 가장 귀중한 계명이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 기도에 주님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서 "주님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나는 비록 부족한 존재이지만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나의 작은 희생의 제물을 바쳐 하루의 일과를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 하루의 모든 일과를 주님께 오롯이 바치는 각오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주 하느님께 권능과 영광
지혜와 굳셈이 있사오니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받으소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과가 하느님의 영광으로 일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가 당할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 주소서
오늘 하루 종일 내가 해야 할 일과 말들이 주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되어 결과적으로 기쁨과 평화로 일과가 끝나기를 바란다. 흔히 우리는 자기 감정대로 또는 자기 기분대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해서 하느님과 이웃에게 잘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
( 잠깐 반성한다.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 아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 오늘 하루도 이미 저물었나이다.
이제 저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통하여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주님을 흠숭하며
지금 이 순간까지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전능하신 천주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지켜주소서.
◎ 아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오늘의 과오를 반성하는 기도이다.
특히 "버릇이 된 죄"를 깨닫도록 기도한다. 예컨대 자주 마음의 죄를 범한다든지 습관적으로 신경질을 내어 주위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나쁜 버릇에 대한 반성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모습이 달라진다. 잘못한 다음 그것을 반성하고 뉘우쳐서 새로운 삶으로 발전해야 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그 날의 모든 것을 청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성인들은 이렇게 교훈한다.
"오늘 하루가 너에게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얼마나 좋은 교훈인가! 하루가 끝나고 반성하게 되면 잘한 것보다 잘못된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저녁 기도는 하루의 생활을 반성하고 이어서 "통회기도"를 바친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그분의 계명인 사랑의 실천을 다짐하면서 향주 삼덕(신덕송, 망덕송, 애덕송)의 기도를 바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하루도 이미 저물었나이다.
이제 저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주님을 흠숭하며
지금 이 순간까지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나이다.
오늘 하루가 무사한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이다. 천사 성인들을 나열하는 것은 역시 그리스도의 큰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지켜 주소서
끝으로 주님의 축복을 받아 오늘 밤도 죄를 짓지 않고 주님의 은총으로 행복한 밤이 되기를 주님께 강복을 청하면서 저녁 기도는 끝난다. 사제들이 바치는 성무일도의 끝기도의 강복은 이렇게 마감한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